모두가 웅크리고 태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순간, 누군가는 당당히 허리를 펴고 거센 비바람을 온몸으로 맞서고 있었다. 인생이라는 거친 태풍 속에서 물러서지 않고 정면으로 맞선 그 사람은, 결국 폭풍을 기회의 땅으로 바꾸며 당당히 서 있는 인물이다. 그의 이름은 정우재, 공격적인 오버래핑과 양발잡이 플레이로 축구 팬들의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된 전북현대모터스의 풀백이다.
사진 : 강복자 피플 제공
혼돈의 20대
태성고등학교를 졸업한 정우재는 K리그 드래프트를 신청했으나 지명받지 못했다. 그 후 일본 실업팀인 츠에겐 가나자와에 입단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경기에 나가보지 못하고 다시 한국으로 들어왔다. 국내 복귀 후 한국 실업리그인 내셔널리그 테스트까지 봤지만 여기서도 떨어지고 말았고, 짧은 기간의 대학 무대 도전 후 입단한 성남FC에서는 2014시즌 2경기를 뛰었다. 하지만 당시 시즌 도중 성남 FC는 감독이 4번이나 바뀌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고, 시즌이 끝난 후 정우재에게는 재계약에 대한 언급도, 방출에 대한 언급도 없어 정우재의 축구 인생은 먹구름이 덮여있는 듯했다.
핵심 선수로 우뚝서다
다음 시즌이 불투명해져 힘든 시간을 보내던 정우재는 지인의 소개로 충주 험멜에 입단했고, 그동안의 설움을 털어내기라도 하듯이, 탈장 수술과 코뼈부상에도 불구하고 리그 26경기를 뛰는 투혼을 발휘하며 팀의 주전선수로 자리매김했다. 2015시즌 18라운드 대구FC와의 경기, 0:1로 지고 있던 경기 후반 14분 50초경 행운은 정우재 앞으로 다가왔다. 정우재 앞으로 날아온 코너킥을 골대 안으로 꽂아 넣으며 프로 데뷔골을 성공시켰다. 간간히 응원 소리만 들리던 긴장된 경기장에 팬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정우재는 인생 처음으로 다른 팀으로부터 영입제의를 받게 되었다. 다음 행선지는 운명의 장난이기라도 한 것일까, 그가 데뷔골을 성공시킨 상대팀 대구FC였다. 대구FC에서 정우재는 자신을 불러준 팀에 대한 보답인 듯, 2016 한 시즌에 무려 37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핵심선수로 거듭났고 팀의 K리그 클래식(1부)승격을 견인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K리그 챌린지(2부) 베스트 일레븐에 이름을 올렸다.
1부 리그로 당당히 복귀
대구에서의 커리어를 쌓아오던 중, 2018년 10월 십자인대파열로 시즌 아웃 된 그는, 2019시즌을 앞두고 K리그의 강호팀 중 하나인 제주유나이티드로 트레이드 이적하게 됐다. 그러나 강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어지고, 리그 꼴찌를 기록하며 창단 첫 2부 리그 강등이라는 굴욕을 경험했다. 하지만 그는 태풍 속에 휩쓸리지 않고 또 한 번 버티며 달렸다. 2부 리그에서 시작한 2020시즌 정우재는 22경기 3골 4도움으로 커리어하이(개인의 가장 높은 기록), 제주는 2부리그 우승을 하며 곧바로 원래 그들의 땅 1부 리그로 복귀했다.
베스트 일레븐 후보까지 달려가다
2021시즌 13라운드에서 전년 시즌 K리그와 FA컵 우승을 하고 2021시즌 12경기 무패행진을 달리고 있는 전북 현대와 맞대결을 펼쳤다. 전반 45분, 팀 동료가 찬 슛이 골키퍼를 맞고 나오자, 정우재가 그 볼을 밀어 넣으며 1대0으로 제주가 앞섰다. 아쉽게 제주가 후반전에 한 골을 먹으며 1대1로 비겼지만, 경기장에 있는 전북 홈팬들을 겁에 질리게 한 정우재의 활약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그의 한 시즌 활약을 인정받기라도 하듯, 2021 K리그1 베스트 일레븐 수비수 부문 후보 중 1명으로 선정됐다.
이제는 최고 클럽으로 가자
2022시즌이 끝나고, K리그 최다우승팀이자 아시아의 리딩 클럽인 '전북현대모터스'에 트레이드로 입단했다. 하지만 그는 또 한 번 태풍 속에 서게 되었다. 정우재가 맞이한 전북 현대의 팀 분위기는 최악이었다. 10위까지 추락, 감독과 팬들 간의 갈등, 팬들의 응원 보이콧 등 전북에게 있어서 상상도 못한 일들이 계속해서 벌어졌다. 홈경기임에도 팬들의 응원소리가 들리지 않는 홈경기장, 최악으로 치닫는 관중 수 등 전북의 홈경기장 '전주성'은 더이상 상대팀에게 악몽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즌 중반부터 전북은 유럽에서 베테랑 감독을 선임하고, 팬들과 감독 간의 갈등도 없어지며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전북에서도 31경기 1도움을 올리며 측면수비의 한 자리를 차지했고 인생 첫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무대 경험까지 하며 아름답게 한 시즌을 마무리했다. 2023시즌 전북의 성적은 K리그 4위, FA컵 준우승, 아시아챔피언스리그 16강 진출이다. 그리고 2024년 2월 14일, 아시아 챔피언스리스 16강전에서 포항에 2대0으로 승리하며 2024년의 힘찬 출항을 알렸다.
많은 축구 팬들은 정우재의 성공한 지금의 모습만 보고 있다. 그러나 기회가 없었음에도 기회를 만들러 다니고, 일본에서 실패 후 자존심을 구기며 도전한 실업리그와 대학리그, 프로 입단 후에도 막막하기만 했던 앞날까지 우리는 자신의 현 위치를 보며 막막한 앞날에 스트레스를 받고는 한다. 수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에 웃는 자는 정우재였다. 실로 그는 그 역경을 딛고 일어서 결국 그가 버티고 서있는 곳을 빛나게 만들어 가는 힘을 가진 행운의 아이콘이었다.